(1/4 기록)
고흐의 재발견, 인간애.
_전시회에 다녀와서 고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만년의 광기 어린 붓질과 색채가 돋보이는 작품 몇몇만 보았을 때는 고흐의 그림들이 참 견디기 힘들었다. 그가 그림을 미치게 한 것인지, 그림이 그를 미치게 한 것인지도 불분명했고, 그보다도 왜, 그는 왜 그렇게 그려야만 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한국에서 열린 최초의 고흐 회고전', '최대 규모의 전시' 등의 타이틀을 달고 시림미술관에서 열린 고흐전이지만 갈까 말까 많이 망설였다. 6개월 전부터 전시 계획을 알고 있었지만 계속 고민했다. 오르세展에서 본 <반 고흐의 방>과 <아를의 무도회장>이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강했고, 훨씬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_신정휴무인 줄 모르고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 출근했다가 허무하게 돌아나오니 할 일이 없어 충동적으로 종로로 향했다. 청계천가의 HOLLY'S 따뜻한 창가에서 올해의 수첩을 펼쳐서 이것저것 적어보았다. 그리고 시립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예상외로 관람객이 많았다. 사물함에 가방을 집어 넣고 천천히, 미심쩍은 말걸음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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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전시는 고흐의 초기작부터 만년작 까지를 연대기 형식으로 보여주는 형식이었다.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고흐의 초기작들,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점차 자신의 색깔을 만들어가는 아를 시기, 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생레미 시기 작품이 꽤 균형 있게 전시되었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 시기의 작품과 가장 유명한 작품들은 구색만 맞추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중이 작았지만, 나는 오히려 그게 좋았다. 덕분에 전시회를 끝까지 견뎌내며 볼 수 있었으니까.
(3/20 기록)
_전시회는 유명 작품에 치우치지 않고 대신 미숙한 초기 그림과 드로잉 연습작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적어도 나에게는, 유효했다. 재능을 타고 나지 않은 젊은 고흐가 그 동안 선택했던 길에서 모두 실패하고 비틀거리며 들어선 화가의 길. 그 길 위에 서서, 어쩔 수 없이 한 발짝 한 발짝 내딛으며, 고흐가 마주치고 부딪혔던 불확정성, 자신에 대한 의구심, 불안감과 절망감은 어떤 것이었을까. 특별할 것 없는 자신의 손재주와 보잘 것 없는
그의 모델들을 그는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았을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 걸어갈 수 밖에 없는 길을, 그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비례가 잘 맞지 않고 과격하며 깔끔하지 못한 선이 조금씩 다듬어지는 모습을 보며, 슬픔과 연민을 느꼈고, 그를 동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벽에 걸린 것은 띄엄띄엄하게 떠 있는 부표일 것이다. 그 사이 차갑고 깊은 불안의 바다에서 가라앉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손을 저었을 고흐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의 어깨를 누르고 발을 잡아당기는 의심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_거리의 매춘부를 담은 드로잉에서 연민과 동정으로 가득 찬 고흐의 시선을 보았을 때, 나는 좀 슬펐다. 그리고 마음이 열렸다. 강렬하다 못해 절박한 고흐의 붓질, 노란색, 한낮에 내리쬐는 태양빛의 색깔에 대한 광기에 가까운 집착이 왜 나타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는 왜 그리고 그리고 또 그리며 자신의 생명력을 다 소진해 버려야 했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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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불안의 바다에서 그는 완벽하진 않지만 헤엄치는 법을 발견했다. 그리고 보잘것 없을 지도 모르지만 자기 몫으로 주어진 길을 보았다. 나는 고흐가 자신을 '인간' 으로 정의내렸고, 그 정의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정의에 누구보다 충실하고자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방법으로 그가 생각한 것은 인간을 사랑하는 것,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가 가진 것은 눈과 손 뿐이었고 그래서 그는 그림을 그려야했다. 그는 자기 자신이 불안했고 자신을 연민했기에 자기와 비슷한 곳에 서 있는 사람을 그려야 했다. 그들을 보듬어야 그 안에 담긴 자신을 어루만질 수 있었을 것이기에. 아무도 쳐다보지 않지만 분명 인간인 자신을 위해, 그는 그들을 바라보았고 사랑했고 그렸을거라 생각한다.
_인간에 대한 사랑, 인간으로 살기 위해 그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하고 위대한 행동은 구체적 대상의 틀에 갇히지 않고 밖으로 펴져나왔다. 그는 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 인간의 삶 자체를 긍정하고자 했고 그 아름다움을 좀 더, 좀 더 분명하게 표현하고 싶었나보다. 그는 드로잉에 이어, 색채도 연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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