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지난 겨울에 만나고 처음 만나는 친구와 무얼 할까 이것저것 이야기하다 전시회를 보기로 했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 『밀레와 바르비종파 거장』전시회를 골랐다. 밀레, 코로, 루소 등등 바르비종파 화가 여러 사람의 작품이 전시되어 었었다.
입장료 8000원에 비해 상당히 만족스러운 전시였다. 100여점의 작품 중 마음에 드는 그림, 인상 깊었던 그림 앞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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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 - 우물에서 돌아오는 여자 / 1855에서 60년 사이 / 유화
_여자는 못 생겼다. 투실투실한 몸매에 피부는 햇볕에 타 불긋불긋하다. 팔뚝에는 힘줄이 서고 손은 일에 거칠어져 큼지막하고 붉게
부르텄다. 목덜미는 살이 접히고 가슴은 펑퍼짐하며 배는 불뚝 나왔다. 발은 큼지막하고 볼품없는 신발에 담겨있다. 소매를 똘똘
걷어올리고 양손에 큼지막한 물동이에 물을 가득 담아 들고 천천히 걸어온다. 수풀은 우거졌고 막돌로 쌓은 담은 나무에 묻혀 있다.
밝고 신나는 모습은 없다. 햇빛은 비치지만 화려한 조명이 아니다. 여자는 그저 묵묵히, 천천히 걸어온다. 해가 떠 있는 동안은
일을 해야 할 것이다. 때와 땀에 절은 옷은 특별히 모양이나 색을 꾸며낸 것이 없다. 1855년에서 60년 사이, 사람들은
실제로 이렇게 살았던 것이다. 여자의 붉은 손을 보아 낸 밀레의 시선이 인상깊다.
밀레 - 새덫 / 1857년 / 파스텔
_창고에 숨어 덫에 뿌려놓은 곡식은 쪼아먹는 새를 조심스레 바라보는 소년의 뒷 모습에서 숨소리가 들릴 것 같다. 덫에 연결된 줄을
살짝 잡고 있는 두 손, 뒤로 뻗은 손이 움찔할 것 같다. 어두운 화면 속에서 문 새로 보이는 환한 배경이 더욱 숨 죽이게
한다. 밀레의 다른 그림들은 사람의 움직임이 매우 정적인데 반해 이 그림은 찰나를 찍은 사진같은 느낌을 준다.
밀레 - 사랑에 사로잡힌 사람들 / 유화
_작은 활로 무장한 꼬마 큐피트들에 둘러싸여 손을 결박당하고 고개를 숙인 채 끌려가는 세 사람. 둘은 여인이고, 한 명은 분명치
않다. 큐피트의 얼굴에는 장난기도, 명랑함도 없다. 냉정하고, 잔인해보인다. 하늘은 온통 어둡다. 서민들에게 사랑은 사치인
것일까? 아니면 죄악이었을까? 저 세사람은 삼각관계에 빠졌을까? 서로 사랑에 빠져서는 안 될 친족이었을까? 낭만적이지 않아서 더
진실해 보인다. 어쩌면 솔직한 욕망을 숨기지 않는 서민들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도덕과 통념을 배제한 작가의 생각이 눈에 띈다.
밀레 - 잠 / 1840년대 / 유화
_푹신한 이불에 폭 싸여 축 늘어져 자고 있는 여자. 몹시 피곤했는지 입까지 조금 벌리고 정말 곤히 자고 있다. 투실투실한 팔이
하나는 머리 위에 아무렇게나 걸쳐져있고, 하나는 침대 턱에 아무렿게나 늘어져있다. 저 여자는 잠시 후 또 부스스 일어나 힘든
하루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침대로 비치는 아침햇살은 그래서 냉정하다.
밀레 - 밭에서 돌아오는 길 / 1873년 / 유화
_뉘엿뉘엿 해는 넘어가고 있다. 나귀 등에 걸터 앉은 여자와 뒤를 따라오는 남자는 표정이 없다. 앞서 걷는 양 세마리도, 짐을 잔뜩
싣고 여자까지 태운 나귀도 터덜터덜 느린 걸음을 걷고 있다. 그들은 어제도, 오늘도 함께 고생했을 것이다. 내일도, 모레도 같은
모습으로 집에 돌아올 것이다. 즐거운 일이 딱히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묵묵히 하루하루 그냥 살아가고 있는 순박한, 소박한
삶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리고 시 한편이 생각난다.
墨畵 - 김종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줄뤼앙 뒤프레 - 건초를 모으로 있는 여자 / 1889년 / 유화
_여자가 움직이는 모습이 힘차다. 휙휙 뿌려버린 물감이 건초 한 가닥 한 가닥의 휘날림을 섬세히 보여준다. 사실적이다. 바람에
건초먼지가 날려올 것 같다. 효과는 정반대이지만 잭슨 폴록의 기법이 연상된다. 젊고 곱상한 여자가 결연한 표정으로 커다란
건초더미를 힘껏 퍼올리는 모습에서 생명력과 삶의 의무, 무게, 그리고 의지가 느껴진다. 멀리 보이는 들판에서도 다른 두 여자가
건초를 모으고 잇다. 무게를 지탱하려고 몸을 뒤로 젖힌 모습에서 힘이 크게 느껴진다. 소장하고 있다가,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
다시 꺼내보고 싶은 그림이다.
트루이베르 - 물고기를 낚는 두 명의 소년 / 유화
_강가로 비스듬히 튀어나온
굵은 나무 줄기에 두 명의 소년이 위태위태하게 걸터올라 낚시를 하고 있다. 낚시대는 가늘고 보잘것없다. 한 소년은 신발이 없다.
강은 꽤나 깊어보인다.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두 소년의 모습이 꽤나 절박하고 결연해보인다. 윗부분이 잘려나간 나무는 금방이라도
뿌리째 뽑혀 강에 둥둥 떠내려 갈 만큼 위태하게 누운 채로 땅에 박혀있다. 내려오라고 소리쳐야 하지만 그럴 수 없을 부모의
마음까지도 상상해본다.
꼬리. 어릴 때 정글짐에서 얼음땡하고, 늑목 꼭대기에서
오징어 하다가 뛰어내리고, 철봉에서 재주를 넘고, 그네를 360도 회전시키기 위해 그네에 서서 힘껏 도움닫기를 하던 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_
코로의 그림은 찍어놓은 사진 같다. 바로 그 장면, 그 순간을 담아낸 듯한, 자연과 인간의 비례가 사실적인(인간이 턱없이 작은)
그림이다. 나무와 물과 사람의 모습은 상상이나 해석 이전의 모습 그대로로, 특별히 아름답거나 다듬어진 느낌이 나지 않는다.
자연적 형태와 색이 주는 안정감을 보여줄 뿐이다. 무질서하게 자라난 나뭇가지와 굳이 푸르지만은 않은 나뭇잎의 색, 화가를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작은 점 같은)의 모습이, 마을을 돌아다니다 어떤 소리가 나서 고개를 한 번 쓰윽 돌려 바라보게 된 광경인
듯한 느낌을 준다.
_사람이 아니라 풍경을 주인공으로, 상상이 아니라 실제 자연을. 코로 그리고 바르비종파의 그림은 '진경산수'와 비슷한 의의를 갖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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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나는 전시회를 일반적인 방법으로 보지 않는다. 전시회의 일반적인 관람방법은 입구의 왼쪽 벽 방향에서 출발하여 전시물을 따라 한바퀴
도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걸으면서 전시물을 '둘러보고' 눈 앞에 다가온 출구를 빠져나가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아깝고
아쉽다. 난 전시회의 내용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일반적 방향 -그것에 맞춰서 전시물을 배열하므로-을 따라 전시장을 몇 바퀴 쓰윽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것, 눈에 띄는 것이 발견되면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전시회를 보기 시작한다. 한 작품을 몇십분이고 그냥
바라보기도 하고, 이쪽 저쪽 코앞 저 뒤에서 관찰해보기도 하고, 작품을 읽으려고 달려들어 보기도하고, 가능하다면 안에
들어가거나, 만져보기도 하고, 할 수 있는 것(하지 말라는 행동을 굳이 몰래 하지는 않는다.), 내키는 것은 정말 다 해보려고
한다. (국립공주박물관에서
고구려 고분벽화 특별전을
보았을 때는 천장벽화를 보면서 심지어 고개를 쳐들고 빙빙 돌기까지 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몇몇 전시물은 한정없이 보고
생각하고 느껴보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것은 지나치며 몇 번 반복해서 보아도 그다지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다. 마음에 드는 것이 발견되는 순서도 그 때 그 때 달라서 전시 순서와 생각나는 순서가 다른 경우도 많다.
이 기록도 실제의 전시 순서와는 전혀 상관없는 순서로 씌여졌다. 그리고 실제 전시에서는 코로가 상당히 비중있게 다뤄졌지만
나에게 다가오는 작품이 딱히 없었기 때문에 코로의 작품에 대한 세부적인 기록은 없다.
_기록을 옮기면서 전시장에서 했던
생각과 받았던 느낌이 너무나 빈약한 글로 옮겨지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후에 그 그림을 기억하지 못할까봐 그림의 모습을
열심히 기록해두려 했더니 도리어 나의 생각이 그만큼 달아나 버렸다.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시 그 때를 떠올려볼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가 될 것 같아 여기에 적어 본다. 7월 8일의 기록이다.
(2005.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