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파리, 아를을 거치며 상투적이지만 그야말고 '극적'으로 바뀐 고흐의 그림. 자기애라고 할 만큼의 연민과 동정이 삶에 대한 긍정으로 옮겨간 것일까. 그저 끌어안아 달래기엔 인생이 너무 겼던 것은 아닐까. 새럽게 발견한 多彩로운 세상을 캔버스에 담기 위해 색채를 연구하고 연습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 그 곳을 꾹꾹 다지면서 고흐는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자기 존재를 긍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로소 나의 존재가 가치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들떠서 그렇게 보고, 그리고, 배치하고, 색칠하고, 연구하고, 실험했을 것 같다. 아직 기법은 미숙해보여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憐歌 대신에 讚歌를.
_아마도 멈출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고흐였다면. 멈추고 돌아보는 순간 여전히 내 그림은 팔리지 않고, 나는 빵 살 돈을 동생에게 받고 있다는 것을 봐야 할 테니까. 햇빛이 찬란하건 하늘이 바다같건 나는 여전히 어두침침하고 보잘 것 없는 방에 혼자 남아있으며, 바라봐 주는 사람도 없다는 것을 보게 될 테니까. 아무리 나를 보듬고 달래봐도 자기의 자기 긍정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을테니까. 하지만 인생이란게 우습게도 끊임없이
아름답다고, 찬란하다고 하면 또 그런 것 처럼 보인다는 걸, 느껴진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글라디올러스가 찬란하고, 생트마리드라메르엔 라벤더향이 나는 하얀 햇빛이 내리쬐고, 노른 잠 앟에는 거침없는 한낮의 태양이 소리치듯 기세를 보리는 것이, 그래서 내게는, 이렇게 상상해 본 내게는 눈물겹다. 그가 바라본 세상이 아름다워서. 태양빛과 바람이 생명력을 함뿍 담고 있어서. 고흐 자신이 그렇게 힘껏 인생을 긍정하고 사랑해서. 그가 죽은 후에 태어나 이후의 일들을 알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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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트마리드라메르의 풍경> 1888.6 / 크뢸러 뮐러 미술관, 오텔로 (이미지 출처 : http://blog.daum.net/panipink69/15217821)
<아이리스>, <노란 집>, <우체부 조셉 롤랭>, <프로방스의 시골길 야경> 도 어찌할 수 없을 만큼 강렬했지만 나는 이 그림을 본 순간 멈춰 섰다. 하늘과 지붕, 라벤더밭의 색채가 신선하면서도 조화롭게 느껴졌다. 오후 세 시나 네 시 쯤, 연한 금색의 투명한 햇빛이 하늘을 비취빛으로 바꾸며 지붕에 떨어지고, 라벤더에 반사되어 건물에 어른거리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 빛을 보았고 그려낸 고흐. 이 그림이 내가 고흐에 마음을 연 결정적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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