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이 전시회에서 두 가지 개인적인 기록을 세웠다. 하나는 최초로 두 시간이 되기 전에 전시회 관람을 끝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처음으로 내 지갑을 열어 도록을 산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세월아 네월아 노래를 부르며 봐도 두 시간 만에 볼 전시회를 세일즈맨 마냥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니면서도 다섯 시간이 걸려서 보는 나로서는 그야말로 ‘콩 볶아먹듯’ 관람을 마친 셈이다. 그리고는 얄팍한 지갑을 서슴없이 열게 되었는데, 그것이 ‘쾌속’ 관람에서 무언가 모자라고 아쉬움이 남아 좀 채워보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도 나에게는 묘한 일이다.
_나의 ‘쾌속’ 관람은 순전히 벽에 걸린 모네의 작품 때문이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순간과 그 순간의 빛, 움직임을 잡아내려 평생 노력한 모네의 작품들은 춤추듯 멈춰 서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빠르게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모네의 빛이 수면 위에서 잘게 부서지며 흘러가고 또 이어지듯, 나의 시선과 발걸음도 그와 같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현대에 사는 내가 색채분할법의 과학 같은 것에 놀라거나 그 효과에 어리둥절하여 멈춰 설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_시립미술관의 부담 없는 공간을 이렇게 두어 바퀴 둘러보고 나니 모네의 작품 세계가, 어떤 관점에서는 덧없는 허상인 순간만을 평생 좇은 그의 삶이 왜 100년이 지나도록 가치를 잃지 않는지 알 것도 같다. 전시회의 부제는 From Instant to Eternity. 모네는 순간을 쫓았고 그를 잡아보려 노력했으나 그가 남긴 것은 영원이 되었다. 그의 눈에서 반짝 빛난 찰나는 캔버스 위에서 그 빛을 영원히 끊임없이 내고 있다. ‘눈에 보이는 빛’을 그대로 표현하고자 한 그의 작품은 어떤 의미에서는 지극히 사실적이나 지금 관람객의 눈에 보이는 그림은 오히려 추상적이다. 어울리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전시회에서 만난 모네 말년의 작품들은 ‘음양 이론’, ‘태극’과 같은 것을 떠오르게 한다. 하나가 극한까지 확대되면 그 순간 정반대의 다른 것으로 다시 시작되어 순환하는 태극. 모네 말년의 작품들은 바로 그 태극의 전환점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는 끝없이 변화하며 양양히 흘러가는 시간의 강에서 단 한 방울의 물만을 찍어내어 캔버스에 묻혀두었으나 그것은 영원한 진리를 형상화하고 있다.
_하지만 그의 작품을 자연의 진리에 대한 탐구의 결과로만 보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순간의 빛, 찰나Instant의 가치를 발견한 모네의 시선은 또한 지극히 현대적이기 때문이다. 그 것은 분명 사진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순간을 영원으로 바꾸며, 한 화면에 그 모순적인 두 성질을 모두 담는 사진. 하지만 모네의 그림은 사진과는 그 형태가 완연히 다르다. 그의 작품에 구체성은 없다. 말년의 작품으로 갈수록 이러한 경향은 뚜렷해진다. 그는 형태의 구체성과 그에서 얻을 수 있는 현실감을 서서히 포기하고, 대신 색채 자체를 통한 표현과 그것의 아름다움을 얻었다. 회화의 바지자락에 매달려있던 ‘현실의 모사’에 대한 압박감에 모네는 조심스레 작별 인사를 건넨 것이다. 지베르니 정원을 소재로 그린 연작들을 보며, 나는 그 동안 모네를 “해돋이 인상”과 “양산을 쓴 여인” 이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에 적잖이 머쓱했다. 그는 그가 발견해낸 빛에 파묻혀 멈춰 서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그 빛에 파묻혔을 따름이다.
_나는 시립미술관의 전시 방식을 좋아한다. 관람객의 직관에 호소하고, 심리의 흐름에 맞춰져있기 때문이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수련 연작을 보는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기억하는 한, 샤갈의 푸른빛과 달콤하게 꿈꾸는 주황색 이후로 이렇게 인상적인 색채는 보지 못했다. 모네의 색채는 이름을 붙일 수가 없다.그 색채는 변화하고 있고,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저 ‘모네의 빛’이다.
_그 빛을 부족하게라도 가까이 두고 싶어 선택한 차선책이 도록이었다. 도록을 들고 전시장 입구를 마주보는 정문 쪽 계단에 앉아 빠르게 글을 적기 시작했다. 전시회 시작일이 공휴일이기 때문인지, 전시장에는 사람들이 물처럼 흘러가고 있다. 계단을 타고 흐르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모네의 작품들과 어쩐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2007년 6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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