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타의 창窓문門

블로그 이미지
여행기는 문門이 되고 사진은 창窓이 됩니다. 모두가 소통의 길입니다.
프타

Articl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37)
공지사항 (2)
여행 이야기 (19)
사진 이야기 (6)
전시 이야기 (7)
문화행사 이야기 (2)

Recent Trackback

Calendar

«   2008/08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

  • Total13090
  • Today0
  • Yesterday5
  1. 2008/06/28
    『위대한 모험, 척 클로스 Chuck Close Prints : Process and Collaboration』展 - 성곡미술관
  2. 2008/03/23
    『불멸의 화가 반 고흐』展 - 서울시립미술관 (2) (2)
  3. 2008/03/20
    『불멸의 화가 반 고흐』展 - 서울시립미술관 (1) (2)
  4. 2007/09/05
    『오르세 미술관』展 -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5. 2007/06/10
    『빛의 화가 모네』展 - 서울시립미술관 (1)
  6. 2007/06/09
    『밀레와 바르비종파 거장』展-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1)
  7. 2007/06/08
    『색채의 마술사 샤갈』展 - 서울시립미술관
  8. 2007/03/22
    공주 여행(4)
_아직 지난 고흐展 다녀온 이야기도 마무리 짓지 못했지만 (게으름에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좀 너무하긴 했다) 오늘 본 전시가 참 인상적이어서 먼저 포스팅을 한다. 성곡미술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위대한 모험, 척 클로스』展에 다녀왔다. 이 전시회는 사실 전시가 진행되는 것을 전혀 몰랐다가 우연히 가게 되었고 그래서 별 기대가 없었다. 아버지께서 이 전시에 같이 가지 않겠냐는 제의를 하셨을 때, 솔직히 조금 시큰둥했다. 작가를 극사실주의 화가라고 소개하셨기 때문이다. 극사실주의 회화에 대한 경탄과 화가의 그 엄청난 노력에 대한 경외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극사실주의 회화 작품 자체에 대한 흥미는 그리 크지 않다. 그래서 갈까말까 망설였지만 다른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표를 사 주신다고 하여 '그냥 가서 구경이나 해보지 뭐'하는 심정으로 따라 나섰다. 가는 길에 아버지께서는 이번 전시회의 작품들이 극사실주의 회화인가 사진인가를 모자이크처럼 붙여 한 작품을 만드는 그런 종류인것 같다고 하셨다. 결과적으로는 아버지도 잘못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 +

Emma

이미지 출처 : http://sungkokmuseum.com/exhibit/exhibit_view_02.asp?code=0000000048&wcode=0000000254&page=1&selectfield=&searchstring=&type=

Emma, 2002
113-color Japanese-style Ukiyo-e woodcut 109.2*88.9cm, Eddition of 55

+ + +

_오후 네 시 즈음에 미술관에 도착해서 때마침 시작한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전시장을 한 바퀴 훓어본 후 다시 처음부터 천천히 돌아보고 나왔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작품, 작가, 전시 모두 마음에 들어 좋았다. 동시대 작가 중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어 아쉬우면서도 다행스럽다.
_척 클로스는 미국 작가로, 1960년대 후반 극사실주의 인물화 및 사진 작업을 했고 1972년 이래 대형 '판화'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주로 인물 사진을 토대로 하여 만들어지며, 메조틴트, 에칭, 실크 스크린, 펄프 페이퍼, 우키요에(일본식 목판화), 유럽식 목판화, 리놀륨 판화 등 다양한 판화 기법을 폭넓게 사용하고 있다. (전시 도록 설명 참조)  아버지께서는 작가의 초기 활동에 대한 정보를 접하셨던 것 같다. 척 클로스가 극사실주의 인물화가로 활동했던 시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이번 전시작 중에 그런 작업을 토대로 한 것들이 꽤 많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이 전시는 그의 '판화 작품'과 '판화 작업'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_처음 전시장에 들어갔을 때 본 것이 바로 위의 Emma 라는 작품이었다. 처음엔 거대한 크기와, 움직이는 액체처럼 보이는 화면이 신기했다. 전시는 작품에 꽤나 가까이 가서 살펴볼 수 있도록 되어있었는데 다가가서 보니 색채의 절묘한 사용이 정말 놀라웠다. 초록색과 파란색이 분홍색을 만들어 내는 것을 눈으로 보고 있으니 작가의 말마따나 "마술같았다".
하나하나의 마름모가 독립적이면서도 조화로운 색채의 조합을 이루면서 동시에 거대한 작품의 일부가 되는 모습, 각각의 부분은 완벽히 추상적이면서도 전체의 작품은 분명한 구상성을 띠는 모습은 신기하면서도 충격적이었다.
_본 전시의 원제는 Chuck Close Prints : Process and Collaboration 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전시는 완성된 작품 뿐 아니라 그것이 태어난 Process와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Collaboration에도 초점을 두어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작품과 그 과정을 같은 비중으로 다룬 전시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위의 Emma도 회화 작품과 그것이 우키요에 방식으로 판화로 재창작되는 과정, 그리고 그 결과물을 함께 볼 수 있었는데 그야말로

노동집약적이고 끊임없는 시도와 수정이 반복되는 과정, 많은 시간을 필요로하는 인내의 과정, 그 과정에서 계속되는 회의, 문제해결, 다양한 사람들의 아이디어-협동작업

작가 혼자 자신의 내면을 밖으로 표현하는 자유롭고 쉬운 방법에 배치되는 힘든 과정을 일부러 택한 작가
결과물, 작품에 앞서는 과정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

마술의 비밀을 알려주는 마술사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는 미술과 신체를 사용하는 노동의 이미지가 연결-내가 생각하는 이미지와 만나는 부분이 있어서 더욱 인상적

한없이 느리고 전통적인방법을 통해 역동적이고 현대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역설이 매력적이다. 또한 과거의 방식을 혁신으로 재창작하고 영역을 넓혀가는 모습이 인상적

색채의 분할과 재조합이 색채에 움직임을 부여하고 그림에도 운동감을 부여
중층적인 화면의 구성과 작업의 과정에서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지.
주제가 주로 인물 - 기하학적 화면 분할과 색채 분할을 통한 이미지와 의미의 분할
중층적인 화면과 색채의 구성을 통한 다양한 이미지와 의미의 차원을 부여함으로써 보편성을 추구
그러나 결과물이 움직임을 갖는 구상적이고 개성적인 하나의 실존 인물이라는 점이 흥미 있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작가가 생각하는 예술의 모습을 자신의 방법과 같이 점진적으로 중층적으로 구성해나가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과 시간(과거와 현재), 대상과 의미, 분해과 재구성, 아이디어와 과정, 수정과 결과물이 모두 켜켜이 내려앉아 만들어진 작품들
요즈음 내 자신과 내가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과정과 유사한 점이 있어서 더욱 마음에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성곡미술관에는 차음 가본 것 같다. 전시장의 공간이 꽤나 마음에 들었고 어찌 보면 단순한 듯한 디스플레이지만 다양한 공간을 활용하여 변화를 주어 지루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시립미술관의 디스플레이를 좋아하는데 그곳은 다양한 동선과 색채, 빛을 활용하여 감각적으로 전시한다면 이 곳은 공간 자체를 활용하는 것 같았다. 다음에 성곡미술관에서 기획하는 전시회도 챙겨보아야겠다.

이번 전시회를 보며 판화작품과 판화 작업에 대해 조금 알게 된 것이 좋다. 특히 구입한 도록에 작가와 작업에 함께 참여한 판화가들의 인터뷰가 실려있는데 작품의 진행과정을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마침 세종문화회관에서도 거장들의 판화작품만으로 전시를 기획했는데 그곳에도 다녀와야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http://sungkokmuseum.com/exhibit/exhibit_view_02.asp?code=0000000048&wcode=0000000256&page=1&selectfield=&searchstring=&type=

+ + +

Trackback 0 and Comment 0
_파리, 아를을 거치며 상투적이지만 그야말고 '극적'으로 바뀐 고흐의 그림. 자기애라고 할 만큼의 연민과 동정이 삶에 대한 긍정으로 옮겨간 것일까. 그저 끌어안아 달래기엔 인생이 너무 겼던 것은 아닐까. 새럽게 발견한 多彩로운 세상을 캔버스에 담기 위해 색채를 연구하고 연습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 그 곳을 꾹꾹 다지면서 고흐는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자기 존재를 긍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로소 나의 존재가 가치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들떠서 그렇게 보고, 그리고, 배치하고, 색칠하고, 연구하고, 실험했을 것 같다. 아직 기법은 미숙해보여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憐歌 대신에 讚歌를.
_아마도 멈출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고흐였다면. 멈추고 돌아보는 순간 여전히 내 그림은 팔리지 않고, 나는 빵 살 돈을 동생에게 받고 있다는 것을 봐야 할 테니까. 햇빛이 찬란하건 하늘이 바다같건 나는 여전히 어두침침하고 보잘 것 없는 방에 혼자 남아있으며, 바라봐 주는 사람도 없다는 것을 보게 될 테니까. 아무리 나를 보듬고 달래봐도 자기의 자기 긍정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을테니까. 하지만 인생이란게 우습게도 끊임없이 아름답다고, 찬란하다고 하면 또 그런 것 처럼 보인다는 걸, 느껴진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글라디올러스가 찬란하고, 생트마리드라메르엔 라벤더향이 나는 하얀 햇빛이 내리쬐고, 노른 잠 앟에는 거침없는 한낮의 태양이 소리치듯 기세를 보리는 것이, 그래서 내게는, 이렇게 상상해 본 내게는 눈물겹다. 그가 바라본 세상이 아름다워서. 태양빛과 바람이 생명력을 함뿍 담고 있어서. 고흐 자신이 그렇게 힘껏 인생을 긍정하고 사랑해서. 그가 죽은 후에 태어나 이후의 일들을 알고 있어서.

+ +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생트마리드라메르의 풍경> 1888.6 / 크뢸러 뮐러 미술관, 오텔로 (이미지 출처 : http://blog.daum.net/panipink69/15217821)


<아이리스>, <노란 집>, <우체부 조셉 롤랭>, <프로방스의 시골길 야경> 도 어찌할 수 없을 만큼 강렬했지만 나는 이 그림을 본 순간 멈춰 섰다. 하늘과 지붕, 라벤더밭의 색채가 신선하면서도 조화롭게 느껴졌다. 오후 세 시나 네 시 쯤, 연한 금색의 투명한 햇빛이 하늘을 비취빛으로 바꾸며 지붕에 떨어지고, 라벤더에 반사되어 건물에 어른거리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 빛을 보았고 그려낸 고흐. 이 그림이 내가 고흐에 마음을 연 결정적 계기였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1 and Comment 2
(1/4 기록)
고흐의 재발견, 인간애.

_전시회에 다녀와서 고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만년의 광기 어린 붓질과 색채가 돋보이는 작품 몇몇만 보았을 때는 고흐의 그림들이 참 견디기 힘들었다. 그가 그림을 미치게 한 것인지, 그림이 그를 미치게 한 것인지도 불분명했고, 그보다도 왜, 그는 왜 그렇게 그려야만 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한국에서 열린 최초의 고흐 회고전', '최대 규모의 전시' 등의 타이틀을 달고 시림미술관에서 열린 고흐전이지만 갈까 말까 많이 망설였다. 6개월 전부터 전시 계획을 알고 있었지만 계속 고민했다. 오르세展에서 본 <반 고흐의 방>과 <아를의 무도회장>이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강했고, 훨씬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_신정휴무인 줄 모르고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 출근했다가 허무하게 돌아나오니 할 일이 없어 충동적으로 종로로 향했다. 청계천가의 HOLLY'S 따뜻한 창가에서 올해의 수첩을 펼쳐서 이것저것 적어보았다. 그리고 시립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예상외로 관람객이 많았다. 사물함에 가방을 집어 넣고 천천히, 미심쩍은 말걸음을 이었다.

+ + +

_전시는 고흐의 초기작부터 만년작 까지를 연대기 형식으로 보여주는 형식이었다.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고흐의 초기작들,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점차 자신의 색깔을 만들어가는 아를 시기, 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생레미 시기 작품이 꽤 균형 있게 전시되었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 시기의 작품과 가장 유명한 작품들은 구색만 맞추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중이 작았지만, 나는 오히려 그게 좋았다. 덕분에 전시회를 끝까지 견뎌내며 볼 수 있었으니까.

(3/20 기록)
_전시회는 유명 작품에 치우치지 않고 대신 미숙한 초기 그림과 드로잉 연습작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적어도 나에게는, 유효했다. 재능을 타고 나지 않은 젊은 고흐가 그 동안 선택했던 길에서 모두 실패하고 비틀거리며 들어선 화가의 길. 그 길 위에 서서, 어쩔 수 없이 한 발짝 한 발짝 내딛으며, 고흐가 마주치고 부딪혔던 불확정성, 자신에 대한 의구심, 불안감과 절망감은 어떤 것이었을까. 특별할 것 없는 자신의 손재주와 보잘 것 없는 그의 모델들을 그는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았을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 걸어갈 수 밖에 없는 길을, 그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비례가 잘 맞지 않고 과격하며 깔끔하지 못한 선이 조금씩 다듬어지는 모습을 보며, 슬픔과 연민을 느꼈고, 그를 동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벽에 걸린 것은 띄엄띄엄하게 떠 있는 부표일 것이다. 그 사이 차갑고 깊은 불안의 바다에서 가라앉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손을 저었을 고흐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의 어깨를 누르고 발을 잡아당기는 의심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_거리의 매춘부를 담은 드로잉에서 연민과 동정으로 가득 찬 고흐의 시선을 보았을 때, 나는 좀 슬펐다. 그리고 마음이 열렸다. 강렬하다 못해 절박한 고흐의 붓질, 노란색, 한낮에 내리쬐는 태양빛의 색깔에 대한 광기에 가까운 집착이 왜 나타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는 왜 그리고 그리고 또 그리며 자신의 생명력을 다 소진해 버려야 했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 + +

_불안의 바다에서 그는 완벽하진 않지만 헤엄치는 법을 발견했다. 그리고 보잘것 없을 지도 모르지만 자기 몫으로 주어진 길을 보았다. 나는 고흐가 자신을 '인간' 으로 정의내렸고, 그 정의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정의에 누구보다 충실하고자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방법으로 그가 생각한 것은 인간을 사랑하는 것,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가 가진 것은 눈과 손 뿐이었고 그래서 그는 그림을 그려야했다. 그는 자기 자신이 불안했고 자신을 연민했기에 자기와 비슷한 곳에 서 있는 사람을 그려야 했다. 그들을 보듬어야 그 안에 담긴 자신을 어루만질 수 있었을 것이기에. 아무도 쳐다보지 않지만 분명 인간인 자신을 위해, 그는 그들을 바라보았고 사랑했고 그렸을거라 생각한다.
_인간에 대한 사랑, 인간으로 살기 위해 그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하고 위대한 행동은 구체적 대상의 틀에 갇히지 않고 밖으로 펴져나왔다. 그는 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 인간의 삶 자체를 긍정하고자 했고 그 아름다움을 좀 더, 좀 더 분명하게 표현하고 싶었나보다. 그는 드로잉에 이어, 색채도 연습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1 and Comment 2
 『오르세 미술관』展 -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확실히, 이 전시회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작품 중 하나는 『피리 부는 소년』이다. 그 그림은 현대인인 내 눈에도 낯설고, 충격적이다. 마치 무대에 서서 단독 조명을 받은 것처럼 뚜렷이 부각된 소년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자체가 도발적이다. 소년의 얼굴과 눈은 동글동글하고, 볼은 발그레하며, 피리를 잡은 손가락은 곰실곰실하다. 단순한 회색 바탕에 이 귀여운 소년이 서서 피리를 입에 대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을 뿐인데, 그 모습이 이상하게 도발적이다. 좀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뻔뻔하다. 이 그림은 뻔뻔하고, 그래서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다.


꽤 오랜 시간동안 그림들을 몇 번이고 보며 내 나름대로의 好惡를 정해보았는데, 이 그림만큼은 好惡가 문제가 아니었다. 이상하게 눈을 잡아끌면서 썩 기껍지도 않은 이 그림의 정체, 그 묘한 뻔뻔함과 아슬아슬한 불편함의 정체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그에 대한 일종의 소심한 복수이다.


전시회에 가기로 결정하기 전에 인터넷에서 감상을 몇 개 찾아보았다. 그 중에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지는 않다.”, “이른바 ‘명품’ 그림을 모아 놓은 전시회” 라는 평이 있었다. 집중도가 높고 짜임새가 있던 모네展과, 전시품의 수가 많음에도 비교적 구체적인 주제를 일관되게 유지한 『中國국보전』을 관람한 후라, 저 말에 전시회에 대한 기대감이 많이 줄어들었다. 게다가 예전에 열렸던 오르세 展과 바르비종파 展을 이미 관람했기 때문에 큰 차이가 있겠는가, 하는 마음도 있었다. 모네 展 이후에 마음먹은 바도 있고, 인터넷에서 도록을 할인 판매하며 초대권을 증정하는 행사도 마침 있기에 도록을 먼저 사서 살펴보기로 했다.

전시 작품은 생각보다 많았고, 다양했다. 예전 오르세 展이 인상파를 중심으로 소개한 것과는 달리, 이번 전시회는 19세기 이후 다양한 화풍의 많은 작가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각종 매체에서 크게 광고한 밀레, 고흐, 마네 등등 너무나 유명한 거장의 그림은 두어 점 씩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두어 점들이 보석 같은 작품이고, 그들과 비슷한 비중으로 여러 화가들을 두루 소개하고 있어 오히려 만족스러웠다. 대신 전시회의 주제와 전시 작품들이 이러하다 보니 어떤 일관된 구성이나 흐름 같은 것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 중 나름대로 好惡를 정해본 작품들에 대해서 간략히 적어본다. 순서는 <피리 부는 소년>을 제외하고 전시 순서에 따른다.

mor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0 and Comment 0

_이 전시회에서 두 가지 개인적인 기록을 세웠다. 하나는 최초로 두 시간이 되기 전에 전시회 관람을 끝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처음으로 내 지갑을 열어 도록을 산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세월아 네월아 노래를 부르며 봐도 두 시간 만에 볼 전시회를 세일즈맨 마냥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니면서도 다섯 시간이 걸려서 보는 나로서는 그야말로 ‘콩 볶아먹듯’ 관람을 마친 셈이다. 그리고는 얄팍한 지갑을 서슴없이 열게 되었는데, 그것이 ‘쾌속’ 관람에서 무언가 모자라고 아쉬움이 남아 좀 채워보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도 나에게는 묘한 일이다.

_나의 ‘쾌속’ 관람은 순전히 벽에 걸린 모네의 작품 때문이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순간과 그 순간의 빛, 움직임을 잡아내려 평생 노력한 모네의 작품들은 춤추듯 멈춰 서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빠르게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모네의 빛이 수면 위에서 잘게 부서지며 흘러가고 또 이어지듯, 나의 시선과 발걸음도 그와 같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현대에 사는 내가 색채분할법의 과학 같은 것에 놀라거나 그 효과에 어리둥절하여 멈춰 설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_시립미술관의 부담 없는 공간을 이렇게 두어 바퀴 둘러보고 나니 모네의 작품 세계가, 어떤 관점에서는 덧없는 허상인 순간만을 평생 좇은 그의 삶이 왜 100년이 지나도록 가치를 잃지 않는지 알 것도 같다. 전시회의 부제는 From Instant to Eternity. 모네는 순간을 쫓았고 그를 잡아보려 노력했으나 그가 남긴 것은 영원이 되었다. 그의 눈에서 반짝 빛난 찰나는 캔버스 위에서 그 빛을 영원히 끊임없이 내고 있다. ‘눈에 보이는 빛’을 그대로 표현하고자 한 그의 작품은 어떤 의미에서는 지극히 사실적이나 지금 관람객의 눈에 보이는 그림은 오히려 추상적이다. 어울리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전시회에서 만난 모네 말년의 작품들은 ‘음양 이론’, ‘태극’과 같은 것을 떠오르게 한다. 하나가 극한까지 확대되면 그 순간 정반대의 다른 것으로 다시 시작되어 순환하는 태극. 모네 말년의 작품들은 바로 그 태극의 전환점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는 끝없이 변화하며 양양히 흘러가는 시간의 강에서 단 한 방울의 물만을 찍어내어 캔버스에 묻혀두었으나 그것은  영원한 진리를 형상화하고 있다.

_하지만 그의 작품을 자연의 진리에 대한 탐구의 결과로만 보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순간의 빛, 찰나Instant의 가치를 발견한 모네의 시선은 또한 지극히 현대적이기 때문이다. 그 것은 분명 사진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순간을 영원으로 바꾸며, 한 화면에 그 모순적인 두 성질을 모두 담는 사진. 하지만 모네의 그림은 사진과는 그 형태가 완연히 다르다. 그의 작품에 구체성은 없다. 말년의 작품으로 갈수록 이러한 경향은 뚜렷해진다. 그는 형태의 구체성과 그에서 얻을 수 있는 현실감을 서서히 포기하고, 대신 색채 자체를 통한 표현과 그것의 아름다움을 얻었다. 회화의 바지자락에 매달려있던 ‘현실의 모사’에 대한 압박감에 모네는 조심스레 작별 인사를 건넨 것이다. 지베르니 정원을 소재로 그린 연작들을 보며, 나는 그 동안 모네를 “해돋이 인상”과 “양산을 쓴 여인” 이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에 적잖이 머쓱했다. 그는 그가 발견해낸 빛에 파묻혀 멈춰 서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그 빛에 파묻혔을 따름이다.

_나는 시립미술관의 전시 방식을 좋아한다. 관람객의 직관에 호소하고, 심리의 흐름에 맞춰져있기 때문이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수련 연작을 보는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기억하는 한, 샤갈의 푸른빛과 달콤하게 꿈꾸는 주황색 이후로 이렇게 인상적인 색채는 보지 못했다. 모네의 색채는 이름을 붙일 수가 없다.그 색채는 변화하고 있고,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저 ‘모네의 빛’이다.

_그 빛을 부족하게라도 가까이 두고 싶어 선택한 차선책이 도록이었다. 도록을 들고 전시장 입구를 마주보는 정문 쪽 계단에 앉아 빠르게 글을 적기 시작했다. 전시회 시작일이 공휴일이기 때문인지, 전시장에는 사람들이 물처럼 흘러가고 있다. 계단을 타고 흐르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모네의 작품들과 어쩐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2007년 6월 6일)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0 and Comment 1


_지난 겨울에 만나고 처음 만나는 친구와 무얼 할까 이것저것 이야기하다 전시회를 보기로 했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 『밀레와 바르비종파 거장』전시회를 골랐다. 밀레, 코로, 루소 등등 바르비종파 화가 여러 사람의 작품이 전시되어 었었다. 입장료 8000원에 비해 상당히 만족스러운 전시였다. 100여점의 작품 중 마음에 드는 그림, 인상 깊었던 그림 앞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 왔다.

+ + +

밀레 - 우물에서 돌아오는 여자 / 1855에서 60년 사이 / 유화
_여자는 못 생겼다. 투실투실한 몸매에 피부는 햇볕에 타 불긋불긋하다. 팔뚝에는 힘줄이 서고 손은 일에 거칠어져 큼지막하고 붉게 부르텄다. 목덜미는 살이 접히고 가슴은 펑퍼짐하며 배는 불뚝 나왔다. 발은 큼지막하고 볼품없는 신발에 담겨있다. 소매를 똘똘 걷어올리고 양손에 큼지막한 물동이에 물을 가득 담아 들고 천천히 걸어온다. 수풀은 우거졌고 막돌로 쌓은 담은 나무에 묻혀 있다. 밝고 신나는 모습은 없다. 햇빛은 비치지만 화려한 조명이 아니다. 여자는 그저 묵묵히, 천천히 걸어온다. 해가 떠 있는 동안은 일을 해야 할 것이다. 때와 땀에 절은 옷은 특별히 모양이나 색을 꾸며낸 것이 없다. 1855년에서 60년 사이, 사람들은 실제로 이렇게 살았던 것이다. 여자의 붉은 손을 보아 낸 밀레의 시선이 인상깊다.

밀레 - 새덫 / 1857년 / 파스텔
_창고에 숨어 덫에 뿌려놓은 곡식은 쪼아먹는 새를 조심스레 바라보는 소년의 뒷 모습에서 숨소리가 들릴 것 같다. 덫에 연결된 줄을 살짝 잡고 있는 두 손, 뒤로 뻗은 손이 움찔할 것 같다. 어두운 화면 속에서 문 새로 보이는 환한 배경이 더욱 숨 죽이게 한다. 밀레의 다른 그림들은 사람의 움직임이 매우 정적인데 반해 이 그림은 찰나를 찍은 사진같은 느낌을 준다.

밀레 - 사랑에 사로잡힌 사람들 / 유화
_작은 활로 무장한 꼬마 큐피트들에 둘러싸여 손을 결박당하고 고개를 숙인 채 끌려가는 세 사람. 둘은 여인이고, 한 명은 분명치 않다. 큐피트의 얼굴에는 장난기도, 명랑함도 없다. 냉정하고, 잔인해보인다. 하늘은 온통 어둡다. 서민들에게 사랑은 사치인 것일까? 아니면 죄악이었을까? 저 세사람은 삼각관계에 빠졌을까? 서로 사랑에 빠져서는 안 될 친족이었을까? 낭만적이지 않아서 더 진실해 보인다. 어쩌면 솔직한 욕망을 숨기지 않는 서민들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도덕과 통념을 배제한 작가의 생각이 눈에 띈다.

밀레 - 잠 / 1840년대 / 유화
_푹신한 이불에 폭 싸여 축 늘어져 자고 있는 여자. 몹시 피곤했는지 입까지 조금 벌리고 정말 곤히 자고 있다. 투실투실한 팔이 하나는 머리 위에 아무렇게나 걸쳐져있고, 하나는 침대 턱에 아무렿게나 늘어져있다. 저 여자는 잠시 후 또 부스스 일어나 힘든 하루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침대로 비치는 아침햇살은 그래서 냉정하다.

밀레 - 밭에서 돌아오는 길 / 1873년 / 유화
_뉘엿뉘엿 해는 넘어가고 있다. 나귀 등에 걸터 앉은 여자와 뒤를 따라오는 남자는 표정이 없다. 앞서 걷는 양 세마리도, 짐을 잔뜩 싣고 여자까지 태운 나귀도 터덜터덜 느린 걸음을 걷고 있다. 그들은 어제도, 오늘도 함께 고생했을 것이다. 내일도, 모레도 같은 모습으로 집에 돌아올 것이다. 즐거운 일이 딱히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묵묵히 하루하루 그냥 살아가고 있는 순박한, 소박한 삶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리고 시 한편이 생각난다.

墨畵 - 김종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줄뤼앙 뒤프레 - 건초를 모으로 있는 여자 / 1889년 / 유화
_여자가 움직이는 모습이 힘차다. 휙휙 뿌려버린 물감이 건초 한 가닥 한 가닥의 휘날림을 섬세히 보여준다. 사실적이다. 바람에 건초먼지가 날려올 것 같다. 효과는 정반대이지만 잭슨 폴록의 기법이 연상된다. 젊고 곱상한 여자가 결연한 표정으로 커다란 건초더미를 힘껏 퍼올리는 모습에서 생명력과 삶의 의무, 무게, 그리고 의지가 느껴진다. 멀리 보이는 들판에서도 다른 두 여자가 건초를 모으고 잇다. 무게를 지탱하려고 몸을 뒤로 젖힌 모습에서 힘이 크게 느껴진다. 소장하고 있다가,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 다시 꺼내보고 싶은 그림이다.

트루이베르 - 물고기를 낚는 두 명의 소년 / 유화
_강가로 비스듬히 튀어나온 굵은 나무 줄기에 두 명의 소년이 위태위태하게 걸터올라 낚시를 하고 있다. 낚시대는 가늘고 보잘것없다. 한 소년은 신발이 없다. 강은 꽤나 깊어보인다.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두 소년의 모습이 꽤나 절박하고 결연해보인다. 윗부분이 잘려나간 나무는 금방이라도 뿌리째 뽑혀 강에 둥둥 떠내려 갈 만큼 위태하게 누운 채로 땅에 박혀있다. 내려오라고 소리쳐야 하지만 그럴 수 없을 부모의 마음까지도 상상해본다.

꼬리. 어릴 때 정글짐에서 얼음땡하고, 늑목 꼭대기에서 오징어 하다가 뛰어내리고, 철봉에서 재주를 넘고, 그네를 360도 회전시키기 위해 그네에 서서 힘껏 도움닫기를 하던 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_ 코로의 그림은 찍어놓은 사진 같다. 바로 그 장면, 그 순간을 담아낸 듯한, 자연과 인간의 비례가 사실적인(인간이 턱없이 작은) 그림이다. 나무와 물과 사람의 모습은 상상이나 해석 이전의 모습 그대로로, 특별히 아름답거나 다듬어진 느낌이 나지 않는다. 자연적 형태와 색이 주는 안정감을 보여줄 뿐이다. 무질서하게 자라난 나뭇가지와 굳이 푸르지만은 않은 나뭇잎의 색, 화가를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작은 점 같은)의 모습이, 마을을 돌아다니다 어떤 소리가 나서 고개를 한 번 쓰윽 돌려 바라보게 된 광경인 듯한 느낌을 준다.
_사람이 아니라 풍경을 주인공으로, 상상이 아니라 실제 자연을. 코로 그리고 바르비종파의 그림은 '진경산수'와 비슷한 의의를 갖는 것 같다.

+ + +

_나는 전시회를 일반적인 방법으로 보지 않는다. 전시회의 일반적인 관람방법은 입구의 왼쪽 벽 방향에서 출발하여 전시물을 따라 한바퀴 도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걸으면서 전시물을 '둘러보고' 눈 앞에 다가온 출구를 빠져나가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아깝고 아쉽다. 난 전시회의 내용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일반적 방향 -그것에 맞춰서 전시물을 배열하므로-을 따라 전시장을 몇 바퀴 쓰윽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것, 눈에 띄는 것이 발견되면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전시회를 보기 시작한다. 한 작품을 몇십분이고 그냥 바라보기도 하고, 이쪽 저쪽 코앞 저 뒤에서 관찰해보기도 하고, 작품을 읽으려고 달려들어 보기도하고, 가능하다면 안에 들어가거나, 만져보기도 하고, 할 수 있는 것(하지 말라는 행동을 굳이 몰래 하지는 않는다.), 내키는 것은 정말 다 해보려고 한다. (국립공주박물관에서 고구려 고분벽화 특별전을 보았을 때는 천장벽화를 보면서 심지어 고개를 쳐들고 빙빙 돌기까지 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몇몇 전시물은 한정없이 보고 생각하고 느껴보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것은 지나치며 몇 번 반복해서 보아도 그다지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다. 마음에 드는 것이 발견되는 순서도 그 때 그 때 달라서 전시 순서와 생각나는 순서가 다른 경우도 많다. 이 기록도 실제의 전시 순서와는 전혀 상관없는 순서로 씌여졌다. 그리고 실제 전시에서는 코로가 상당히 비중있게 다뤄졌지만 나에게 다가오는 작품이 딱히 없었기 때문에 코로의 작품에 대한 세부적인 기록은 없다.
_기록을 옮기면서 전시장에서 했던 생각과 받았던 느낌이 너무나 빈약한 글로 옮겨지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후에 그 그림을 기억하지 못할까봐 그림의 모습을 열심히 기록해두려 했더니 도리어 나의 생각이 그만큼 달아나 버렸다.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시 그 때를 떠올려볼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가 될 것 같아 여기에 적어 본다. 7월 8일의 기록이다.


(2005.07.12)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0 and Comment 1

드디어 샤갈전 갔다왔다.

9월 24일 금요일.
두 달은 벼른 것 같은 샤갈전에 드디어 갔다왔다.
서현언니와 둘이서 바닷속에 빠졌다 나왔다.
좋았다.

_우연히도 전문가분께서 설명을 해 주시는 시간에 맞추어 관람을 하게 되었지만 우리는 설명은 외면해버리고 마음대로 그림을 보았다. 샤갈의 그림 안에는 아주 많은 것들이 뒤섞여있고 녹아있어 계속 보면서도 계속 모자라고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시간의 제약만 없었더라면 아마 난 다리 근육과 발뼈가 허락하는 만큼 계속 서서 보고 또 봤을거다. 어차피 마음대로 보기로 한 그림, 샤갈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보다는 내가 무슨 말을 듣고 싶었는지에 더 귀기울여서 보았더라면 좀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파란 풍경 위의 연인>, <인어공주와 물고기>
_내가 기억하는 그림의 제목은 대략 이렇다. 맞는 지는 모르겠다. 그림의 색채와 인상이 강해 제목은 좀 희미하다. 둘 다 푸른 그림이었다. 하나는 따뜻하고 몽롱한 파랑이었고, 하나는 맑고 순수하고, 그리고 따뜻한 스웨터를 입고 맞는 가을바람 같은 느낌을 주는 파랑이었다.
_이상하게도 샤갈의 푸른색은 물감에서 뽑아낸 듯한 푸른색으로 보이지가 않았다. 꿈 속에서 보는 듯한. '꿈' 이라는 단어는 내가 좀 자주 쓰는 수식어이긴 하지만, 이번만큼은 수식어가 아니라 서술어로 (딱 들어맞는 단어는 아닌 것 같지만) 쓰게 된다. 샤갈의 푸른색은 꿈이라는 단어로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 색이었다. 그 푸른색이 어찌나 눈에 박히던지. 얼굴이 푸른색으로 물들어 버릴 만큼 보고 보고 또 보았다. 하도 그림안에 상징이며 그런 것들이 많아보여 뭘까뭘까 하면서 보던 머릿속이 파ㅡ랗게 비워져서 그저 서서 보았다.

_샤갈이 그린 성화들도 아주 많이 전시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또 그런 쩍쩍 붙는 그림이 하나 있었다. 다윗왕이 등장하는 그림이었는데,. 제목은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난다. 이 그림은 연한 붉은색과 따뜻하게 흩어지는 주황색과 조용한 보라색의, 그러니까 아주 가끔 부끄럽게 얼굴 내미는 노을색의 그림이었다. 천상세계와, 거기서 굽어보이는 정말 평화로운 지상세계가 있었다. 그런 색의 하늘 아래서라면, 천상이면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지상이라도 목뼈 있는 줄 까맣게 잊고 살 수 있을것 같았다. 불리지 않는 노래도 들으면서.

_석판화들도 붓질 흔적이며, 은은하고 착한 색채들이 정말 좋았다. <오딧세이>의 삽화들도 많이 있었는데, 뭐든 하나 집어 들어 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같이 간 언니는 석판화는 별로고 유화들이 훨씬 좋다고 했는데 나는 오히려 석판화들이 훨씬 눈에 들었다. 유화들은 어쨌건 샤갈이 비상한 재주로 그린" 그림이었지만 석판화들은 그냥 그 색이 그렇게 거기 있어왔고, 그렇게 있어야만 하는 것처럼 보였다. 샤갈이 휘두른 붓질 흔적마저도 그냥 그렇게.

_봤던 그림을 보고 또 보고 보면서 다시 보다 결국 출구를 지나와야만 했다. 미술관 문을 나서면 눈 뜨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 싫어 주저 앉고 싶었다.

_우리는 정말 바다에 빠졌다가 나왔다.



(2004.10.01)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0 and Comment 0
선은 하나하나 살아있어 힘이 있었다.
사신의 색은 아직도 선명하여 신령스러움을 느끼게 했다.
고구려인들은 어디서 그런 색을 보았길래 그런 것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
고구려 시대로 돌아가 그 벽화들을 보았다면 그 앞에서 무릎을 꿇었을 것 같다.

앞에서 보았던 것과는 또 다른 청룡.
하늘 가득한 서기가 아름다웠던 앞의 벽화와는 들리 강서큰무덤의 청룡은 별다른 배경없이 혼자서 벽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비한 청색과 붉은색, 정교한 생김새가 그 자신이 청룡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맞은 편의 백호와 오른편의 주작도 아름다웠다. 주작은 그 벼슬에서부터 꼬리깃까지 하늘대는 깃털의 선이 아름답고 생명력이 있었다.
좌우에 두 마리 (마리라고 표현하기가 죄송하다.)가 마주보며 날개를 쳐 솟구쳐 가 버릴 듯 하다.
주작 맞은 편의 현무. 온갖 사신도의 현무 중 가장 아름다운 강서큰무덤의 현무. 실제외 꼭 같은 모습과 색깔로 북쪽에 보티고 선 현무. 벽이 부서지고 그 거북이와 뱀이 서로 서기를 입에서 내뿜으며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눈을 마주칠 것 같았다. 그 굽이치는 거북이 목과 휘감아치는 뱀 고리는 붓으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두 머리와 네 다리가 이루는 균형은 완벽했으며 검고 붉은 색은 그 자신이 玄武임을 눈이 멍멍하도록 알려주고 있었다.
어떤 물감으로 그리면 천년이 지나도록 그 겈고 붉은 기운이, 고작 벽에 그려진 그 색의 기운이 살아있는 사람의 눈과 가슴을 떨리게 할 수 있는 것일가.
눈길이 붙어 차마 떼어낼 수가 없었다.
몇 시간이고 그 현무를 마주하고 서서 힘찬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싶었다.
도가의 세상. 별세계. 神仙이 사는 세상. 인간이 죽어 도달할 곳.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보고 싶었다.
내 위에 무언가 날고 있을 것만 같아서.
그런데 거기에는 또 하나의 벽화가 있었다.
천장벽화. 고구려의 모줄임 양식천장에 그려진 벽화.
연꽃, 당초, 서조, 신선, 해, 달, 고구려의 삼족오, 구름과 상서로운 기운.
노랫소리가 들려오지 않았을까? 고개를 뒤로 꺾고 그 아래를 빙글빙글 돌았다.

함께 간 사람들이 밖에 주루룩 앉아서 모두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애타게, 그야말로 애타게 현무를 바라보고 돌아 나와버렸다.


+ + +



사신도의 방 속에 들어선 내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또 다시 청룡이었다.
청룡을 보고 몸을 돌려 등 뒤를 보니 백호가 버티고 있었다. 오른쪽에는 현무가, 왼쪽에는 주작이 버티고 서있었다.
함께 왔던 사람들은 이미 다 보고 나갔는지 아니면 아직 뒤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때는 나 혼자 그 사신들이 버티고 선 가운데 있었다.
아무 배경도 없이 벽에 덩그러니 그려져 있는 강서큰무덤의 사신도들 사이에서 나는 2004년 11월 20일의 시공을 잊었다.

소름까지 돋게 했던 진파리 1호분의 청룡이 생각나 청룡에 먼저 다가갔다.
진파리 1호분의 청룡이 그 유려하고 휘굽어지는 선, 하늘 가득히 상서롭게 빛나는 붉은 빛과 날 듯이 가벼운 선으로 시작하여 어느새 연화로 끝나던 서기(瑞氣)의 표현으로 넘치는 운동감과 신성성을 보여주었다면,
강서큰무덤의 청룡은 자신이 청(靑)룡임을 눈이 얼얼할 정도로 나에게 외쳐대고 있었다.
천년의 세월을 무덤 안에 있으면서 공기에 삭아 그 색이 떨어지고 바래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청룡의 색은 푸르렀다.
이미 그 형태는 보통 상상하는 용의 모습을 넘어서서
하나의 넘치는 힘을 가진 상서로운 존재로서의 특성을 나타내는 방향으로 크게 변했지만
그 푸른색은 그것이 청룡임을 너무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나는 그것이 벽화임을, 그것도 벽화의 모사도임을 잠깐 잊었다.
그 색 바래고 갈라진 청룡이 한번 고개를 털고 허리를 꿈틀하여 자신의 색을 가리고 있던 것들을 모두 날려버린 후에 한기마저 피어오를 것 같은 선명한 푸른빛을 사방에 뿌리며 날아와 나를 휘감아 칠 것만 같았다.
도대체 어떤 물감이 천년이 지나도록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저러한 푸른색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일까 속으로 끊임없이 묻기만 했다.
몸을 간신히 돌려 백호를 보았다.
앞에서도 그랬듯, 이상하게도 백호 역시 힘과 운동감이 넘치고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생명력이 가득 차 있었지만 청룡만큼 나에게 큰 감흥을 주지는 않았다.

그리고, 강서큰무덤의 현무를 보았다.
나는 사신 중에서 현무를 가장 좋아한다.
현무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강서큰무덤의 현무를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오히려 고개를 천천히 돌리게 되었다.

북쪽 벽에는, 검은 거북과 뱀이 서로 뒤엉켜 정(靜)과 동(動)이 오묘하게 조화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사신도의 다른 그림에서는 힘과 운동감이 표현되고 있다면 현무는 힘과 운동감이 균형과 절제 안에 가득 채워져 표현되고 있었다.
현무 뒤에는 아무런 배경도 그려져 있지 않았지만 그것이 오히려 현무에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
그것이 그저 한 평면에 그려져 있거나, 박혀있는 것이 아니라 한 공간 안에서 질량을 갖는 존재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바로 다음 순간 나와 눈이 마주쳐 그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머리를 내 쪽으로 돌리고 흰 입김을 뿜으며 검은 두 목을 내 쪽으로 뻗쳐올 것만 같아 몸이 굳었다.
검고 붉은 몸 빛깔은 청룡처럼 선명했고, 코끝부터 꼬리 끝까지 묘사가 허술한 곳이 없어 정말로 사후세계에 누군가 가서 현무를 직접 만나고 그 자리에서 그려서 다시 현세로 가져온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것이 그저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현무의 검은 등에서 피어오르는 축축한 연기에 휘감긴 것 같은 착각에 빠져서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보고 또 보았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아쉬운 것이 정말로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 가운데 눕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그림 앞에서 뒤로 물러서고 나서야 고개를 뒤로 돌려볼 수 있었다.
남쪽에는 무덤의 문이 있고, 그 양쪽으로 한 쌍의 주작이 한 마리씩 있었다.
날개를 한껏 쳐든 모양이 이제 막 사래를 쳐서 비상할 것 같은 형상이었다.
주작의 붉은색도 아름다웠고 수탉같이 경망스러운 모양이 아니라 봉황의 신령스러운 모습으로 완성되어 역시 훌륭했다.
하지만 방금까지 현무에 압도되어 있었기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작은 주작은 다정하게만 보였다.

사신도를 모두 둘러보고 그래도 아쉬워 현무를 한참 더 들여다보다 무심코 고개를 위로 들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예기치 못한 천장벽화가 또 하나 매달려 있었다.
고구려의 모줄임 형식과, 그 면면마다 그려진 벽화를 모두 그대로 옮겨 그려놓은 것이었다.
하늘에는 삼족오와 두꺼비가 선명한 해와 달이 있었고 별들이 있었고 구름이 있었고 연꽃과 신선이 있었다.
네 벽과 함께 천장까지 모두 실제 모습 그대로 나를 둘러싸고 있으니 정말로 내가 그 무덤을 만든 고구려 시대에 그 안으로 들어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자꾸 밀려왔다. 사방에서 사신이 꿈틀거리고, 하늘에는 해와 달과 별이 떠있고 구름과 연꽃이 날리는 가운데 신선이 날고 있으니 그야말로 내세에 가게 된 듯한 착각이 들었으며
죽어서 이곳에 눕는다면 정말 그런 곳으로 가게 된다고 믿게 될 것 같았다.

도대체 얼마나 정신없이 보고 서 있었는지 모르겠다.
함께 갔던 사람들이 의자에 전부 죽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민망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여 얼른 강서큰무덤에서 나왔다.
그 뒤로도 진파리 1호분의 벽화가 더 있었지만 방금처럼 정신없이 보고 있을 수가 없어 고개만 몇 번 돌려보고 말았다.

처음에 의구심과 불신감을 가지고 가볍게 들어섰던 전시실이었고, 사실 전시된 벽화가 아주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곳을 떠나기가 너무 아쉬웠다.
따로 공주에 와서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결국 시간의 제약으로 그 생각은 그냥 생각으로 남고 말았지만 몇 장의 벽화 모사도로 시공을 잊고 희열을 느낄 수 있었던 11월 20일은 내 안에 강렬하게 새겨졌다.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