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은 하나하나 살아있어 힘이 있었다.
사신의 색은 아직도 선명하여 신령스러움을 느끼게 했다.
고구려인들은 어디서 그런 색을 보았길래
그런 것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
고구려 시대로 돌아가 그 벽화들을 보았다면 그 앞에서 무릎을 꿇었을 것 같다.
앞에서 보았던
것과는 또 다른 청룡.
하늘 가득한 서기가 아름다웠던 앞의 벽화와는 들리 강서큰무덤의 청룡은 별다른 배경없이 혼자서 벽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비한 청색과 붉은색, 정교한 생김새가 그 자신이 청룡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맞은 편의 백호와 오른편의 주작도
아름다웠다. 주작은 그 벼슬에서부터 꼬리깃까지 하늘대는 깃털의 선이 아름답고 생명력이 있었다.
좌우에 두 마리 (마리라고 표현하기가
죄송하다.)가 마주보며 날개를 쳐 솟구쳐 가 버릴 듯 하다.
주작 맞은 편의 현무. 온갖 사신도의 현무 중 가장 아름다운 강서큰무덤의
현무. 실제외 꼭 같은 모습과 색깔로 북쪽에 보티고 선 현무. 벽이 부서지고 그 거북이와 뱀이 서로 서기를 입에서 내뿜으며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눈을 마주칠 것 같았다. 그 굽이치는 거북이 목과 휘감아치는 뱀 고리는 붓으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두 머리와 네 다리가 이루는 균형은
완벽했으며 검고 붉은 색은 그 자신이 玄武임을 눈이 멍멍하도록 알려주고 있었다.
어떤 물감으로 그리면 천년이 지나도록 그 겈고 붉은
기운이, 고작 벽에 그려진 그 색의 기운이 살아있는 사람의 눈과 가슴을 떨리게 할 수 있는 것일가.
눈길이 붙어 차마 떼어낼 수가
없었다.
몇 시간이고 그 현무를 마주하고 서서 힘찬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싶었다.
도가의 세상. 별세계. 神仙이 사는 세상. 인간이
죽어 도달할 곳.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보고 싶었다.
내 위에 무언가 날고 있을 것만 같아서.
그런데 거기에는 또 하나의
벽화가 있었다.
천장벽화. 고구려의 모줄임 양식천장에 그려진 벽화.
연꽃, 당초, 서조, 신선, 해, 달, 고구려의 삼족오, 구름과
상서로운 기운.
노랫소리가 들려오지 않았을까? 고개를 뒤로 꺾고 그 아래를 빙글빙글 돌았다.
함께 간 사람들이 밖에 주루룩
앉아서 모두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애타게, 그야말로 애타게 현무를 바라보고 돌아 나와버렸다.
+ + +사신도의 방 속에 들어선 내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또 다시 청룡이었다.
청룡을 보고 몸을 돌려 등 뒤를 보니 백호가 버티고 있었다. 오른쪽에는 현무가, 왼쪽에는 주작이 버티고 서있었다.
함께 왔던
사람들은 이미 다 보고 나갔는지 아니면 아직 뒤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때는 나 혼자 그 사신들이 버티고 선 가운데 있었다.
아무
배경도 없이 벽에 덩그러니 그려져 있는 강서큰무덤의 사신도들 사이에서 나는 2004년 11월 20일의 시공을 잊었다.
소름까지
돋게 했던 진파리 1호분의 청룡이 생각나 청룡에 먼저 다가갔다.
진파리 1호분의 청룡이 그 유려하고 휘굽어지는 선, 하늘 가득히 상서롭게
빛나는 붉은 빛과 날 듯이 가벼운 선으로 시작하여 어느새 연화로 끝나던 서기(瑞氣)의 표현으로 넘치는 운동감과 신성성을 보여주었다면,
강서큰무덤의 청룡은 자신이 청(靑)룡임을 눈이 얼얼할 정도로 나에게 외쳐대고 있었다.
천년의 세월을 무덤 안에 있으면서 공기에
삭아 그 색이 떨어지고 바래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청룡의 색은 푸르렀다.
이미 그 형태는 보통 상상하는 용의 모습을 넘어서서
하나의
넘치는 힘을 가진 상서로운 존재로서의 특성을 나타내는 방향으로 크게 변했지만
그 푸른색은 그것이 청룡임을 너무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나는 그것이 벽화임을, 그것도 벽화의 모사도임을 잠깐 잊었다.
그 색 바래고 갈라진 청룡이 한번
고개를 털고 허리를 꿈틀하여 자신의 색을 가리고 있던 것들을 모두 날려버린 후에 한기마저 피어오를 것 같은 선명한 푸른빛을 사방에 뿌리며 날아와
나를 휘감아 칠 것만 같았다.
도대체 어떤 물감이 천년이 지나도록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저러한 푸른색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일까 속으로
끊임없이 묻기만 했다.
몸을 간신히 돌려 백호를 보았다.
앞에서도 그랬듯, 이상하게도 백호 역시 힘과 운동감이 넘치고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생명력이 가득 차 있었지만 청룡만큼 나에게 큰 감흥을 주지는 않았다.
그리고, 강서큰무덤의 현무를 보았다.
나는
사신 중에서 현무를 가장 좋아한다.
현무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강서큰무덤의 현무를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오히려 고개를
천천히 돌리게 되었다.
북쪽 벽에는, 검은 거북과 뱀이 서로 뒤엉켜 정(靜)과 동(動)이 오묘하게 조화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사신도의 다른 그림에서는 힘과 운동감이 표현되고 있다면 현무는 힘과 운동감이 균형과 절제 안에 가득 채워져 표현되고 있었다.
현무
뒤에는 아무런 배경도 그려져 있지 않았지만 그것이 오히려 현무에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
그것이 그저 한 평면에 그려져 있거나, 박혀있는
것이 아니라 한 공간 안에서 질량을 갖는 존재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바로 다음 순간 나와 눈이 마주쳐 그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머리를 내 쪽으로 돌리고 흰 입김을 뿜으며 검은 두 목을 내 쪽으로 뻗쳐올 것만 같아 몸이 굳었다.
검고 붉은 몸 빛깔은
청룡처럼 선명했고, 코끝부터 꼬리 끝까지 묘사가 허술한 곳이 없어 정말로 사후세계에 누군가 가서 현무를 직접 만나고 그 자리에서 그려서 다시
현세로 가져온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것이 그저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현무의 검은 등에서
피어오르는 축축한 연기에 휘감긴 것 같은 착각에 빠져서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보고 또 보았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아쉬운 것이
정말로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 가운데 눕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그림 앞에서 뒤로 물러서고 나서야 고개를 뒤로 돌려볼 수 있었다.
남쪽에는 무덤의 문이 있고, 그 양쪽으로 한 쌍의 주작이 한 마리씩 있었다.
날개를 한껏 쳐든 모양이 이제 막 사래를 쳐서 비상할
것 같은 형상이었다.
주작의 붉은색도 아름다웠고 수탉같이 경망스러운 모양이 아니라 봉황의 신령스러운 모습으로 완성되어 역시 훌륭했다.
하지만 방금까지 현무에 압도되어 있었기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작은 주작은 다정하게만 보였다.
사신도를 모두 둘러보고 그래도
아쉬워 현무를 한참 더 들여다보다 무심코 고개를 위로 들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예기치 못한 천장벽화가 또 하나 매달려 있었다.
고구려의 모줄임 형식과, 그 면면마다 그려진 벽화를 모두 그대로 옮겨 그려놓은 것이었다.
하늘에는 삼족오와 두꺼비가 선명한 해와
달이 있었고 별들이 있었고 구름이 있었고 연꽃과 신선이 있었다.
네 벽과 함께 천장까지 모두 실제 모습 그대로 나를 둘러싸고 있으니
정말로 내가 그 무덤을 만든 고구려 시대에 그 안으로 들어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자꾸 밀려왔다. 사방에서 사신이 꿈틀거리고, 하늘에는 해와
달과 별이 떠있고 구름과 연꽃이 날리는 가운데 신선이 날고 있으니 그야말로 내세에 가게 된 듯한 착각이 들었으며
죽어서 이곳에 눕는다면
정말 그런 곳으로 가게 된다고 믿게 될 것 같았다.
도대체 얼마나 정신없이 보고 서 있었는지 모르겠다.
함께 갔던 사람들이
의자에 전부 죽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민망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여 얼른 강서큰무덤에서 나왔다.
그 뒤로도
진파리 1호분의 벽화가 더 있었지만 방금처럼 정신없이 보고 있을 수가 없어 고개만 몇 번 돌려보고 말았다.
처음에 의구심과
불신감을 가지고 가볍게 들어섰던 전시실이었고, 사실 전시된 벽화가 아주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곳을 떠나기가 너무 아쉬웠다.
따로 공주에
와서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결국 시간의 제약으로 그 생각은 그냥 생각으로 남고 말았지만 몇 장의 벽화 모사도로 시공을 잊고
희열을 느낄 수 있었던 11월 20일은 내 안에 강렬하게 새겨졌다.
(2004)